“더럽다. 정말 더러워”
한국 귀화 선수 출신의 륀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의 밀어주기 반칙 논란을 빚은 중국 쇼트트랙 남자대표팀의 쑨룽(25)이 믹스트존에서 한국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 논란을 빚고 있다.
10일 시나스포츠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쑨룽은 전날인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을 마친 이후 공동 취재 구역(믹스트존)을 빠져나가면서 글로벌 언론들을 향해 “더럽다! 그냥 더러워!”라고 고함을 지르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웨이보 등 중국 SNS에 게시된 영상 속에서 쑨룽은 해당 말을 외치며 지나가고, 이에 인터뷰를 하던 중국 여자 대표팀의 선수가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잡히기도 한다.
한국이 자신에게 악의적인 반칙을 했다는 게 쑨룽의 불만이다.
시나스포츠는 이 장면을 두고 “쑨룽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국이 쇼트트랙 두 경기에서 중국 대표팀에게 악의적인 반칙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해석하며 “1000m 결승에서의 판정은 쑨룽에게는 당연히 불만이었을 것이다. 쑨룽이 이 때문에 인터뷰에서 한국 팀을 비난했다”며 정면으로 한국대표팀을 겨냥했다.
하지만 적반하장의 상황이다. 오히려 석연치 않은 판정 속에서 탈락이란 피해를 당한 것은 한국이었다.
박지원, 장성우, 김태성, 박장혁으로 꾸려진 대표팀은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6분59초782로 카자흐스탄(6분59초415)에 이어 두 번째로 레이스를 마쳤다. 하지만 심판진은 경기 후 박지원의 파울을 지적, 한국을 실격 처리했다.
상황은 이랬다. 한국 박지원은 결승선을 2바퀴 남기고 한국 대표 출신 린샤오쥔(중국·한국명 임효준)과 선두를 놓고 격돌했다. 박지원이 먼저 역전에 성공하면서 앞서갔다. 그러자 이때 마지막 코너에서 인코스로 파고든 린샤오쥔이 먼저 손을 사용했고, 박지원도 이에 대응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뒤에 있던 카자흐스탄 선수가 치고 나오면서 1위로 결승선에 들어왔고 린샤오쥔은 카자흐스탄 선수와 충돌해 뒤로 밀렸다. 그 사이 박지원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심판이 박지원에게만 페널티를 선언, 실격함에 따라 4위로 통과한 중국이 어부지리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의 입장에선 먼저 미는 동작을 했던 린샤오쥔이 아닌 박지원만 페널티를 받게 된 상황. 린샤오쥔과의 불필요한 몸싸움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끝까지 1위 경쟁을 펼칠 수 있었는데 그 사이 카자흐스탄 선수만 어부지리로 득을 본 셈이 됐다. 거기다 페널티로 은메달까지 잃게 된 억울한 상황이다.
그러나 반대로 쑨룽은 한국의 반칙 때문에 중국이 동메달을 땄다는 식의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인 셈이다. 실제 중국 웨이보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와 언론 들은 “한국의 반칙 때문에 중국이 동메달을 따게 된 피해자”란 식의 반응을 일제히 드러냈다.
실제 중국 매체 ‘소후’는 한국 선수들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거칠게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후는 “박지원이 린샤오쥔을 계속 손으로 방해했다. 결국 린샤오쥔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면서 “한국은 파울로 실격 처리가 됐는데 경기 종료 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면서 한국 선수들이 린샤오쥔을 쓰러뜨릴 목적으로 고의 충돌을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여자 쇼트트랙의 레전드 선수이자 현재는 해설가로 활약중인 왕멍도 자신의 웨이보에 관련 영상을 올리며 “이게 쇼트트랙이냐 빙상 킥복싱이냐. 어떻게 한국은 우리에게 연속해서 펀치를 날리냐”며 한국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남겨 논란을 빚었다.
이런 분위기이게 시나스포츠 역시 쑨룽의 무례한 발언도 포장해 나갔다. 시나스포츠는 “계주 경기서 중국과 한국 선수 간에 신체 접촉이 많았다. 또한 쑨룽은 경기 도중 여러 차례 레이스에 방해를 받았다”며 “남자 1000m 경기에서도 쑨룽은 넘어졌지만 심판은 한국이 반칙하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이때문에 쑨룽은 상대 선수의 경기장 내 행동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앞서 쑨룽은 9일 열렸던 남자 1000m결승레이스에서 넘어지면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린샤오쥔 또한 준결승에서 박지원(서울시청)과 일본의 마쓰즈 슈타 등과 경합하던 도중 반칙을 범해 탈락했다. 당시 린샤오쥔은 인코스를 파고들어 경쟁 선수들을 제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린샤오쥔은 마쓰즈와 접촉했다. 이후 마쓰즈가 흔들리면서 대열에서 이탈했고 린샤오쥔은 경기 종료 후 탈락했다.
이어 열린 1000m 결승전에선 한국 대표팀의 장성우가 줄곧 선두로 치고 나간 이후 1분28초304로 가장 먼저 골인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초반 레이스에서 뒤처지면서 4위권에 머물렀던 박지원도 막판 스퍼트와 저력을 보여주면서 1분28초829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과정에서 박지원과 쑨룽과 접촉이 있었고, 쑨룽은 손으로 박지원의 얼굴을 치기도 했다. 쑨룽은 이후 홀로 개인 주로를 하던 중 넘어졌고, 뒤따르던 중국팀 동료 사오앙 류의 레이스를 막기도 했다.
경기 종료 후 심판진은 비디오 리뷰를 통해 반칙 여부를 살펴봤지만 박지원과 쑨룽의 접촉이 한 선수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페널티 실격 판정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쑨룽에게는 불만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장면에서 쑨룽은 홀로 직선주로로 넘어가던 도중 넘어졌고, 다른 바퀴에선 인코스로 뒤따르던 한국 선수의 얼굴을 가격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해당 장면에서 실격당하지 않은 것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쑨룽이었다.
정작 오히려 그보다 더 명백하고 큰 문제는 먼저 열렸던 남자 500m 개인전 결승전에서 벌어진 명백한 중국의 반칙 상황이다.
당시 린샤오쥔 500m 개인전에서 중국 귀화 이후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며 감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 도중 함께 레이스를 펼쳤던 쑨룽이 밀어주기 반칙을 한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을 함께 받고 있다.
당시 500m 결승선을 2바퀴 남진 직선 주로에서 박지원이 인코스로 린샤오쥔과 쑨룽을 한꺼번에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그러자 3위로 뒤따르던 쑨룽이 오른손으로 린샤오쥔의 엉덩이를 손으로 밀어주는 듯한 동작이 중계 영상 속 화면 속에서 포착됐다.
이후 린샤오쥔은 아웃코스로 내달려 박지원을 다시 제친 이후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속도가 떨어진 쑨룽은 4위로 밀려나 경기를 마쳤다.
경기 종료 후 린샤오쥔은 중국대표팀의 전재수 코치에 달려가 눈물을 쏟았다. 한국 대표팀의 박지원과 장성우는 이후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린샤오쥔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규정 295조 2항에 따르면 쇼트트랙 선수들은 경기 중 동료로부터 ‘밀어주기’ 도움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허용되는 계주와 달리 개인전은 동료 선수의 몸을 밀어주는 식의 도움을 주는 행위가 반칙이 되고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한국 대표팀과 코칭스태프도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을 경기 종료 후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까지 판정에 대해 항의하지 않으면 그대로 결과가 인정된다. 결국 린샤오쥔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올랐다.
이후 ‘밀어주기 반칙’ 논란이 제기되자 중국 언론은 오히려 ‘떳떳하다’는 식으로 항변했다. 쑨룽이 린샤오쥔을 도와준 긍정적인 장면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복수의 중국 언론은 쑨룽이 임효준을 도와준 감동적인 장면으로 평했다. 중국중앙(CC)TV는 “쑨룽이 린샤오쥔이 체력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왔다. 이것이 바로 ‘팀 차이나’의 정신”이라며 극찬했다.
베이징청년보와 같은 매체는 아예 “린샤오쥔이 추월할 때 쑨룽이 자신의 자리를 내줬고, 추월하는 순간 린샤오쥔에게 앞으로 전진하라고 손짓으로 알렸다”며 밀어주기가 아닌 방향을 지시했다는 식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쑨룽은 “판정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박지원)를 때리지 않았다”며 “대체 이게 왜 내 반칙인가? 공정한 판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쇼트트랙의 재미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을 강변했다.
쑨룽은 대회 쇼트트랙 일정이 모두 끝난 이후 자신의 웨이보에도 한국 대표팀을 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감사해야 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상대 팀이 제공한 귀중한 경험에도 감사드린다”며 뒤끝을 담은 발언을 전했다.
또한 중국 언론과 인터뷰에선 “스포츠 정신은 깨끗하고 순수하며, 오염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마치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쇼트트랙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로 이번 대회를 마치면서 대회 최강의 위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개최국으로서 이번 대회 많은 메달을 노렸던 중국은 린샤오쥔의 500m 개인전 금메달과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번번이 한국에 밀려 원하는 결과를 가져가지 못하자 스포츠맨십의 정신도 잃고 한국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이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